바람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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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공간 1: 광장 
June 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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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라, 때로는 공연을 위한 무대나 집회 장소로 사용되는 스벤보르 공립고등학교 본관 로비층

'낯설게 하기 효과'라는 시론으로 유명한 문인, 베르톨르 브레히트Bertolt Brecht가 한때 망명한 적이 있는 덴마크 스벤보르, 그곳에 갔었던 적이 있습니다. 물론 스벤보르 망명 시절에 브레히트가 <스벤보르 시편>을 지었다는 사실은 그곳을 다녀온 후에나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덴마크를 방문하게 된건 교육시스템과 교육방법, 학교 환경에 대한 관심이었습니다. 때문에 덴마크에 체류하던 내내 주로 학교를 탐방하고 교육관계자들을 만나는게 일이었지요.

사실 수 년 전 북유럽교육 탐방을 통해 공공성의 최첨단 국가가 주는 복지와 교육 환경의 황홀경을 이미 맛보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주로 그들이 추구하는 교육철학과 가치가 현장에서 어떻게 실현되고, 이를 위해 교사들은 주로 어떤 고민을 하는지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그런데 학교를 방문하면 할수록 눈에 띄는 건 교육 공간이었습니다. 공간에 대한 그들의 교육적 고민은 분명 남달랐습니다. 특히... 구성이나 배치가 그러합니다. 스웨덴이든, 핀란드든 학교 본관에 들어섰을 때 처음 마주하는건 카페테리아였습니다. 우리로 치면 매점과 식당이라고 할 수 있는데, 누구든 이곳을 거쳐야만 교실로 갈 수 있습니다. 이를 나는, 아침식사를 하지 않은 아이는 수업에 절대로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교육철학과 의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실제로 그렇구요. 우리나라의 어느 지방자치 단체장이 '학교에 밥 먹으러 옵니까'라는 말에 담긴 인식과는 무척 대조적이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학교의 매점이나 식당이 대체로 지하나 학교 구석 어딘가에 위치해 있는 것과도 비교가 되었습니다.

덴마크의 학교도 핀란드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스벤보르에 있는 한 고등학교Svendborg Gymnasium에 방문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이곳에서는 여느 학교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볼 수 있는 카페테리아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광장이 있었습니다. 본관으로 들어갈 수 있는 출입구도 여러 군데로 나뉘어져 있어 어느 곳으로 들어가든 이곳 아고라 같은 널찍한 공간으로 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대처럼 사용하는 한 곳을 제외한 나머지 방향으로는 계단이 있었고, 그 밑에는 의자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 개의 테이블이 군데군제 놓여 있었고 한 쪽에는 피아노도 있었습니다. 질서없이 나뒹굴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그 무질서는 전날 작은 콘서트나 연극, 아니면 혹 예배를 드리고 난 후의 흔적이었습니다. 그만큼 여러모로 변용가능한 창조적인 공간이었지요.
그들이 공간을 나누고 구성하고 기획하는 것은 오로지 가르침과 배움을 최적화하는데 있습니다. 철저하게 교육적입니다. 교육자의 시선으로 설계하고 고집스럽게 건축합니다. 교육이 우선이라 말하면서 뒤로는 다른 건물을 설계하지 않습니다. 건축에 담아야 할 교육적 가치와 철학을 우선하지 이윤 추구나 정치적 입김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육 외 어떤 비본질적인 의도나 입김에도 쉽사리 무너지지 않습니다. 견고합니다. 그런 공간에서 365일 매일을 놀고 살고 자라는 아이들은 오롯이 삶에 밴 교육을 합니다. 그러니 무료하게 반복하는 잔소리 같은 훈화도 필요없는 것이지요. 복잡하고 두꺼운 매뉴얼적인 교육과정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종일 지내야 할 배움의 공간에 풀어낸 철학과 고집이 있기에 가르치는 자나 배우는 자가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신뢰합니다.

모든 학생의 출입구를 단 한 곳으로만 통하게 하는 획일적 공간에 대한 반성과 성찰없이는 풀뿌리 자치회의니 학생인권이니를 아무리 얘기해봤자 공염불에 불과합니다. 미래사회에서 요구하는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능력과 함께 자기주도적인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말해봤자 아고라같은 광장 하나 없는 학교에서는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다음세대를 생각한다면, 진정 그들을 위한 교육혁신을 원한다면 우선 배움의 공간을 돌아볼 일입니다. 그리고 광장이 있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실제 눈으로 보이는 광장 뿐만아니라 광장의 소통을 하고 있는 공간인지를 깊이 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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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야르벤파고등학교 본관 로비층을 3층에서 내려다 본 사진
 
 
[글과 사진,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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