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가 되면 나는 교사인지, 선생인지, 스승인지를 묻는다.
처음에는 선생이었던 것도 같고, 아주 가끔은 스승인 것도 같은데
어찌 해를 거듭할 수록 교사가 되어가는 듯 해 부끄러웠다.
경험이 쌓일수록 연수를 더할수록 스승에 가까워져 가야 하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나는 거꾸로 가고 있는게 아닌가.
깨어있지 않으면, 매일 껍질을 벗겨내지 않으면 '그냥 교사'가 되어
차라리 '먼저 난' 경험있는 마을 아저씨보다 못한 사람이 되고 만다.
단지 '가르치는 자'라는 자존감도 좋지만, 그보다는 차라리 '먼저 경험한 자'가,
그리고 그보다는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가만히 돕는 자'가 아이의 성장을 위해서 더 좋다.
그러기 위해서 가르칠뿐만 아닌 늘 배우는 자여야 하고 그렇게 얻게 된 앎을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끝내는 발로 내려보낼 수 있어야 한다.
앎이 맒으로, 맒에서 다시 삶으로 이어지는 통전적인 교육을 하는 자가 곧 스승이어야 한다.
아이들은 다 다르다. 그러니 50명의 학생이 있으면 50개의 각기 다른 교육과정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게 다른 아이들이 홀로 있지 않고 함께 있으면 숲을 이루어 모두가 주어진 몫을 해낼만큼 잘 성장한다.
햇볕과 공기와 물과 적당한 양분만 있으면 제 숨을 쉬며 자란 아이들은 제 몫을 스스로 감당할 줄 안다.
따라서 각기 다양한 숨을 타고난 아이들을 보듬어줄 제 각각의 선생들이 필요하다.
마치 서로 다른 색깔과 무늬와 향기와 높이를 지닌 나무와 나무가 모여 만든 숲과 같이
오로지 공부만 하고, 교대나 사범대를 거쳐, 임용고시를 통해 기계적으로 훈련된 교사가 모인 학교가 아니라
앎과 맒과 삶이 하나로 통합된, 각자 생활한 삶의 이력을 지닌 선생들이 모여 이룬 배움의 공간이 더없이 필요하다.
그런 선생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생을 선생으로 존중해줄 때만 가능하다.
겉으로만 보이는 사랑만이 아니라 속 깊은 마음을 담은 존중을 더할 때 비로소
그리 받은 사랑과 존중이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해질 것이다.
미국의 신학자이면서 철학자인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이,
상대를 믿어라.
그러면 그들도 나를 진실하게 대할 것이다.
상대를 거룩하다고 여겨라.
그러면 그들 자신이 거룩함을 보여줄 것이다.
라 말했던 것처럼 스승의 날이 선생을 스승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끝까지 신뢰하고 끊임없이 존중하는 것으로 선생은 그들 자신이 스승임을 입증해 보일 것이다.
[글과 사진,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