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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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비극의 현장, 산청 함양사건 
May 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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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길을 걸었습니다. 주천-운봉 구간을 시작으로 나흘 간 지리산을 둘러 둘러 걸으며 나무를 만나고 숲을 만나고, 그 숲에 사는 생물을 만나 이야기하며 걸었습니다. 그런데 혼자 걷지 않고 올망 졸망 아이들과 함께 손 잡고 걸었습니다. 그 길의 끝에 만난 산청 함양의 슬픈 역사에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우리의 굴곡진 역사를 돌이키보면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어처구니없기도 하구요. 사람이란게 참 그런가 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인간의 원죄도 선악과라 이름한 사과에 대한 탐욕에서 비롯되었고, 뒤를 이은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도 아우에 대한 형의 시기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캐보면 신학적인 더 깊은 의미들이 있겠지만 인류의 범죄는 그렇게 사소한 탐욕과 시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소하지 않습니다. 그 탐욕과 시기란 것이 평온한 삶을 한 순간에 뒤헝클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의 시작은 알고보면 단순한 정치적 술수와 함께 인간의 기본적인 시기심을 건드린게 아닐까요. 그러고보면 한국 현대사의 수많은 사건과 참사와 전쟁의 발단은 사소한 듯 보이지만 전혀 사소하지 않은 인간의 본성에 기인한 것입니다. 4.3이나 5.18과 같은 항쟁이 일어난 그 원인을 살펴보면 최초 시작은 몇몇 사람들의 탐욕에서 시작한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단지 공비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군이, 1951년 산청군 금서면과 함양군 유림면 일대 12개 마을의 주민 705명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거도 이런 이간의 원죄적 이기심에 비롯된 것이겠지요. 마치 필로폰을 흡입한 후 집단적인 환각 상태에서 죽음의 광란을 벌인 듯, 이처럼 말도 안되는 아비규환의 생지옥이 불과 한 세기도 채 안되는 우리의 현대사에서 자행된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념이라는 외피는 다르지만 결국 내포된 인간의 탐욕에 의해 빚어진 4.16참사는 어떤 점에서 학살이었습니다. 총칼 대신 '가만히 있어라'고 한 어른들의 원죄적 이기심과 무능함이 결국 생때같은 아이들을 깊은 바닷 속에 수장시킨 것이다. 그런데도 그 죽음 앞에서 시체 장사를 한다며 비아냥거리는 이들이 있다. 공감 능력이 없는 이 무서운 세대는 카인의 후예와 다름 아닌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을 대상으로 죽음의 카니발을 벌였던 나치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그러기에 이와 같은 민족의 비극은 계속 반복되고 되풀이 되는 것이 아닌가.
이미 한 세대를 뒤선 어른 세대는 다음 세대에게 역사를 퇴행시킨 큰 빚을 졌다. 그것은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채무가 아니다. 그 채무에는 오랜 각성과 기억을 통해 더 이상 이런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책임이 뒤따른다. 그러기 때문에 틈나는 대로 잊지 않겠다 약속하고 함께 손을 잡고 걸으며 그 역사의 생생한 현장에서 배움이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단지 울컥하는 마음에, 단말마의 비통함을 쏟아내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될 일이다. 낭만적 시선을 걷어내고 매일 조금씩 길을 걸어갈 일이다.
 
[글과 사진,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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