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치료할 수 있을까
페르난도 마이렐레스가 우리에게 진지하게 던지는 화두이다. <시티 오브 갓 City of God>으로 오스카 감독상 후보에 올랐던 페르난도 마이렐레스(Fernando Meirelles)는 존 르카레가 쓴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하면서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다. 사랑이 이 세상을 치료할 수 있을까? 그렇다. 그는 적어도 이 영화의 주인공 퀘일부부를 통해서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사랑, 그 사랑만이 세상을 치료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Love. At any cost).
콘스탄트 가드너(The Constant Gardener)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케냐에 파견된 영국 외교관 저스틴 퀘일(랄프 파인즈)의 아내로 인권운동가인 테사 퀘일(레이첼 와이즈)이 북부 케냐에서 잔인하게 살해당한 채 발견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인권운동가 테사와 정원가꾸기가 취미인 온화한 성품의 외교관 저스틴은 서로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게 된다. 케냐 주재 영국대사관으로 발령을 받은 저스틴과 테사는 케냐에서 곧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며 평온하고 행복한 시간을 갖는다. 그러나 거대 제약회사인 쓰리비의 음모의 파헤치려는 테사와 그녀의 그런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저스틴은 갈등을 일으키고, 그 갈등을 깊어만 간다. 그러던 중 UN관계자를 만나기 위해 동료와 함께 로키로 떠났던 아내는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오고, 대사관은 테사가 여행 중 강도의 습격을 받은 것으로 사건을 서둘러 종결지으려 한다. 하지만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어 괴로워하던 저스틴은 배후에 외교특권을 가지고 이 사건의 진실을 밝혀나가던 중 결국 이 사건이 영국과 케냐 정부에서 성급하게 결론을 지은 것처럼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니라 정부 고위관리와 세계적인 제약회사가 개입된 음모가 배후에 있음을 알게 된다.
개봉한지 10년 가까이 되는 이 영화를 다시 끄집어 내 이야기하는 이유는, 우선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배우가 주인공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78회 아카데미상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았던 레이첼 와이즈의 매력에도 끌려서겠지만 <잉글리쉬 페이션트>와 <쉰들러 리스트>로 두차례 오스카 상 후보에 올랐던 랠프 파인즈에 대한 남다른 호감 때문이었다. 이들이 바로 퀘일 부부로 나온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게는 ‘아프리카!’하면 실향민이 갖는 향수보다 더한 진한 그리움이 있다. 그 그리움은 지금으로부터 딱 20년 전 케냐와는 반대인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가나(Ghana)에서 두 해 정도 보낸 삶의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테사가 흑인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이나 그녀를 따르는 동네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예전에 내 품에 안겼던 수많은 가나의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가 떠올랐다. 보름 가까이 땀띠 때문에 잠도 못 이룰 정도로 나를 괴롭혔던 적도의 작열하는 태양도 충분히 담아낼 만큼 투명하고 순수한 그 눈동자는 그 안에 깃든 작은 예수의 사랑이었다. 그 눈빛을 이 영화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눈을 통해서, 그들을 바라보는 테사의 눈을 통해서, 그녀를 사랑하는 저스틴의 눈을 통해서 다시 볼 수 있었다.
생존을 위해 거대 다국적 제약회사의 신약개발을 위한 임상실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가난하고 힘없는 케냐의 빈민촌 사람들, 우리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도 그런 가난과 폭력에 몸 떨며 살아야했던 시절이 있지 않았는가. 하지만 서로를 향한 따뜻한 눈빛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사랑이 있었기에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별을 가꿀 수 있었다. 아무리 미래가 어두워보여도 우리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사랑만이, 오직 사랑만이 세상을 치료할 수 있다. 거기에는 진정한 용기와 헌신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 영화의 제목이자, 저스틴의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정원사로서의 저스틴’에 대해 랄프 파인즈는 이렇게 얘기한다. “저스틴은 열정적인 정원사이다. 정원사의 내면에는 고요함이 존재하며 주의 깊게 그 생명과 성장을 지켜본다. 정원사는 언제나 한 생명이 어떻게 결실을 맺을지 끝없는 관심을 기울인다.”
오직 아프리카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올라 적도의 약자들을 위해 헌신했던 테사의 눈빛, 그녀를 끝까지 신뢰하고 그녀의 죽음 뒤에 숨겨진 추악한 음모를 파헤치는 저스틴이 아프리카 사막의 무법자들을 피해 비행기에 함께 탈 수 없었던 아프리카 아이, 아북을 바라보던 눈길은 생명이 성장해 가는 것을 지켜보는 정원사의 변함없는 사랑, 그것이었다. 저스틴이 비행기에 오르며 남긴 말이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다.
“아북은 괜찮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