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가 흙을 비집고 세상에 나온 건
제가 키운 줄기와 열매를 보고 싶은 까닭이다.
그저 제 몸뚱아리를 위해
흙으로 숨쉬며 빨아대던 그가
목숨걸고 길 위로 한껏 모가지를 내놓은건
제가 드리운 그늘을 걷는
이 세상의 사람들을 보고 싶은 까닭이다
보고 싶은 까닭에 뒷꿈치 한껏 치켜들고
바라보다
바라보다
제가 키워낸 줄기만큼이나 키가 자란 뿌리에게
사람들은 말을 건넨다.
이제는 흙암을 벗어나 사람처럼
바라보고 말하며 사랑하게 된 뿌리가
사람에게 말을 건넨다.
그리고
제가 키운 열매 하나가
그 사이로 떨어진다.
[시와 사진, 권상한]
(전남 강진의 '다산초당' 가는 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