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 첫 눈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대로 눈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얗게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눈이 내리고 쌓이면 보기에 참 좋은 느낌을 누리기도 전에
영하로 내려간 기온으로 얼어붙게 될 도로를 바라보며 퇴근할 걱정을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감성은 메말라가고 현실에 대한 근심의 나이테만 둘러가는 제 모습이 낯설기만 합니다.
도심 한 복판이지만 그래도 길 가에 쌓인 눈밭이 좋아라 친구랑 눈뭉치를 던지며 놀다온 작은 아들의 동심을 칭찬해주기 보다
아무 연락없이 늦게 나타난 것에만 집착하며 혼내는 어른의 모습에 스스로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그래서 예전에 살던 동네에서 눈쌓인 경치를 찍은 사진을 다시 꺼내보며 현실적인, 너무나 현실적인 가엾은 나를 위로합니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무조건 등산화를 꺼내 신발끈을 조이고 아이젠을 달고선 산에 오르며
눈꽃의 황홀을 즐기던 불과 몇 해 전의 감수성도 이제 바랬나 봅니다.
더 추워진 날씨에 오늘 먹을 것과 내일 입을 것을 염려하는 50대를 목전에 앞둔 아버지의 감성이 숲을 어지럽힐까 저어하는 마음으로
하얀 눈 숲에 가득한 흰 나무와 머리채 긴 겨울바람을 순수를 바라봅니다.
하여 잃어버린 순수의 꽃, 내 마음의 흰 눈을 길어올리고 싶습니다. [글과 사진,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