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에 나무가 많다.
그 나무들 중 한 그루 위에 앉아있는 것을 남편이 사진에 담았다.
새가 예쁘기도 하지만 저 높은 곳에 사뿐히 앉아있는 모습이 마음에 와 닿았다.
40대 아줌마가 되니, 더이상 꿈이니 비전이니 하는 것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니쁘게 말하면 아무런 꿈이 없는 채로 그냥 산다는 것이다.
30대까지만 해도 '나의 꿈'이 무엇인지 궁금했고, 때론 부끄럽기도 했다.
아직까지 그것도 모르고 사나 싶어 그랬다.
그리고 뭔가 큰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유명새를 타는 사람들 중 특히 음악을 하는 사람을 부러워했다.
그건 지금도 그렇다.
음악활동을 하면서 밥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이 존경스럽다.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생계도 책임질 수 있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 어찌 쉬운일일까?
그만큼 그의 예술에 가치를 부여받았다는 이야기인고로 존경스럽다 못해 배아프기까지 했다.
살다보니,
한 남자의 아내로, 두 아들의 엄마로 살다보니,
엄마의 무남독녀 외동딸로, 시부모님의 막내며느리로 살다보니,...
꿈이 뭐 밥먹여주나 싶고
생활이 우선이 된지 오래되었다.
사실, 기독교인으로 살다보니
비전이 뭐냐는 이야기를 20대 초중반부터 해서 줄기차게 들어왔다.
멋진 비전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훌륭해 보였고, 상대적으로 뭔가 똑부러지게 말할 수 없는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바보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다 몇년 전 어느 날 나의 참된 비젼은 예수닮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사느냐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되느냐라고 하지 않는가!
게다가 이젠, 이 나이쯤 되니 누가 비젼이나 꿈을 묻진 않는다.
기도제목과 아이들의 진로를 묻는다.
그래서 이젠 꿈과 비전에 대한 나눔의 부담감은 사라졌지만,
울 아들들의 진로와 학업 성취(?)나 그 밖의 생활 태도 등에 대한 나눔에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아주 월등하게 뭔가를 해낸다거나 꿈을 위해 열정을 불태운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할 수 없을 때 오는 그런 부담감,
아마 아는 엄마는 다 알 것이다.ㅋㅋ
저 나무 위에 앉은 새처럼 자유롭고 싶은 나는
사람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는 부담감에서 자유롭고 싶다.
주관이 뚜렷해서 내 삶을 똑부러지게 설명할 수 있고,
상황과 환경에 흔들림없는 해석과 받아들임이 있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또 교회 안에서 기독교인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잘 해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도 자유롭고 싶다.
아이들을 똑소리나게 잘 키우고,
남편에게도 최고의 내조로 돕는 배필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부모님들께 효도하는 착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도 자유롭고 싶다.
다만, 예수님이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보시고 어떻게 행동하셨을까?
내가 예수님과 조금이라도 닮기는 한 걸까?
이런 부담감이 나를 사로잡되,
오히려 그로인해 더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
그러나 눈을 살짝 돌리면, 다시금 나는 세상살이와 생활에 쏘~옥 들어가
그런 자유를 생각지도 않게 된다.
그래도 다시 한 번 새기고 다짐하기를,...
오늘도 예수님과 함께 하으리~!
그래서 자유를 만끽하으리~!
^^
[바람 사진/ 나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