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을 모르고 자란 아이들은 역경이 닥쳐올 때 어떻게 대응할까. 우치다타츠루 교수가 말한대로 하류지향적인 삶의 행태를 보일까 아니면 자기에게 당면한 고난을 거뜬히 이겨내고 보란듯이 길을 걸어갈까. 물론 사람마다 다르고 여러 변인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이겠지만 예전에 비해 애완의 시대에 수동적으로 길러진 아이들이 보일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일 것이라 예단한다.
그런데 풍족하게 누리며 자란 아이들이 의외로 결핍을 잘 받아들인다. 몇 분 전에 버스가 도착할지 상세히 알려주는 디지털 도시에 익숙한 아이들을 데리고 6.25 전쟁이 일어난지도 모르고 지냈다는 옥천군 안내면 시골집에 간 적이 있다. 그런데 거미줄과 벌레가 난무했던 숙소에서 보낸 하루를 오랫동안 추억한다. 물론 하루 이틀이 아니라 그런 생활한 환경이 매일 연속되면 또 달라지겠지만 자기에게 주어진 하루의 결핍을 달게 받아들인다.
어쩌면 그런 환경의 결핍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동무와 함께 여행하는 즐거움이 일상에 가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푹신한 듀오백 의자가 아니더라도 실시간으로 도착 정보를 알려주는 디지털 환경이 아니더라도 함께 길을 묻고 어깨동무하는 친구가 있으면 그들은 족하다. 그런데 그런 족한 즐거운 일상을 미래의 불확실한 행복에 저당 잡힌채 오늘을 누리지 못한다. 결핍을 모르는 결핍을 지닌 아이들은 그래서 여행하는 벗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너무 많은 결핍으로 힘들어 하는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 또한 여행하는 벗과 함께 오직 사랑만이 그 결핍을 채워갈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 결핍이, 그로 인한 상처(scar)가 오히려 그의 삶에 별(star)이 될거라 믿는다.
[글과 사진,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