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파밭에서 언 땅을 뚫고 구멍난 비닐 사이로 고개를 내민 양파 싹을 봅니다.
겨우내 얼었던 땅을 딛고 밝은 햇볕과 맑은 바람에 제 몸 맡기며 봄을 노래하는 양파의 어린 싹을 봅니다.
땅 속 깊은 곳에서 올라온 온기로 제 속을 채우고 바람으로 한 꺼풀의 몸을, 햇볕으로 또 한 겹의 몸을,
그리고 속살거리는 봄비로 나뭇잎 닮은 우의를 덮어쓴 양파를 꿈꾸며
이른 봄 지리산 자락에서 아이들의 손에 의지하며 활짝 기지개 켠 꿈꾸는 양파를 보았습니다.
언젠가 누군가의 손에 한 꺼풀 한 겹 벗겨질 몸이지만 그것으로 제 것의 본분을 다하는 양파의 열정을 봅니다.
그러기에 양파의 새싹은 노래하듯 춤추듯 바람과 함께 너풀거리며 오롯이 봄을 즐깁니다.
열병식 하듯 줄지어 선 양파밭을 바라보며 어느 새 봄이 성큼 내 앞에서 왔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어느 새 내 몸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굳이 껍질을 벗기고 벌거벗은 채로 내 입 안으로 삼키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밭에서 함께 일하는 아이들도 어느 새 모두 껍질을 벗고 하나가 되어갑니다.
이랑이 더 이상 혼자 외따로 있지 않듯 밭이랑 봄이랑 처음 양파밭에 온 아이들이랑 하나가 되었습니다.
[바람의 글과 단비의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