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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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사회 
April 1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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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피로사회'를 통해 이미 우리 사회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던 한병철 교수가
'투명성'을 전복하는 예리한 통찰로 다시 한번 논쟁을 일으키는 담론을 제시했다.
그는 '투명사회는 만인이 만인을 감시하는 새로운 통제사회'라며
현대인이 자신의 모든 정보를 자발적으로 전시하고 나누며 스스로 '디지털 통제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여전히 투명하지 않은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다소 설득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우리에겐 더 많은 자유와 더 많은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투명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우선 앞선다.
하지만 그가 제시하는 새로운 개념과 비판을 따라가다 보면 투명성이 갖는 전체주의적 본질에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커뮤니케이션은 같은 것끼리 반응할 때, 동일자의 연쇄반응이 일어날 때 최대 속도에 도달한다.
다름과 낯섦의 부정성, 타자의 저항은 매끄러운 동일자의 커뮤니케이션을 방해하고 지연시킨다.
투명성은 타자와 이질적적인 것을 제거함으로써 시스템을 안정시키고 가속화한다.
이러한 시스템의 강제로 투명사회는 곧 회일적 사회가 된다. 바로 이 점에 투명사회의 전체주의적 특성이 있다.
"획일화를 표현하는 새 단어: 투명성" -본문 중에서
 
그런 점에서 그는 '투명한 언어는 형식적 언어, 즉 어떤 애매모호함도 없는 순전히 기계적이고 조작적인 언어'라고 진단한다.
물론 독일사회에서도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것처럼 한국사회에서도 여러 논쟁을 일으킬만한 논지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익숙하게 생각해온 것을 뒤집고 전복시킴으로 새로운 의미를 추구하는 철학자의 본분에 충실한 이런 사유는
사물을, 사람을,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동기를 준다.
행복의 중세 독일어 'Gelucke'는 '빈틈'을 의미하는 'Lucke'에 접두어 ge가 붙은 것이라 한다.
머무름을 가질 수 없이 점점 빈틈이 사라져가는 삶 속에서 새삼 투명성이 강조되는 '투명사회'는
어쩌면 스스로 자신을 발가벗겨 보이는 '정보사회'의 다름 아닐까.
또 어찌보면 한국사회가 이렇게 빨리 인터넷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예로부터,
조금만 친해지면 집안에 있는 밥 그릇 수 뿐만아니라 내밀한 비밀까지 알고 싶어하는 전통적인 기질에서 기인한,
하지만 공론의 장에서 함께 얘기해야 할 것은 감추이고 여전히 속내를 알 수 없는 이중성이 가득한 사회가 아닐까.
 
[사진과 글,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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