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잡지 못한 역사는 반복됩니다. 그래서 지난 날의 과오를 반복해 겪지 않으려면 오늘의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메르스는 세월호의 다른 이름입니다. 정부가 메르스 방역에 한계를 보이고 있는건 바로 지난 해 세월호 참사에서 보여준 무능함과 무력함과 무공감의 되풀이입니다. 그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정직한 성찰이 없었기에, 지금 여기를 바로잡지 않은 역사는 불과 1년 만에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보다 더 광범하고 더 무차별적으로 두려움과 불신의 바이러스를 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자들은 오늘의 책임만이 아니라 내일의 책임까지 감수할 각오가 필요합니다. 그런 책임감이 없는 자는 결단코 위정자나 통치자로 자리하면 안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런 과거를 지닌 역사가 오늘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왜란 때 백성을 버리고 임진 나루를 건너 개성으로 도망간 조선시대 왕의 판박이와도 같은 대통령이 통치를 시작한 한국 현대사, 의주까지 몰려 요동으로 피란갈 의향까지 내비친 선조나 수원에서 멈추지 않고 대전을 거쳐 대구까지 갔다 다시 대전으로 돌아온 이승만이나 도찐개찐입니다. 그나마도 자의가 아니라 누군가 '각하, 너무 많이 오셨습니다'라고 진언한 때문은 아닐까요. 하지만 이승만은 한 수 더해 한강 다리를 끊어 버렸습니다. 그것도 피난민이 한강 다리에 가득 있을 때 다리를 폭파시켰다고 합니다. 그렇게도 자기들은 물불 가리지 않고 도망가면서 서울 시민에게는 '안심하라'며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할 때까지 방송을 내보냈다고 합니다. 세월호의 '가만있으라'와 똑같지 않나요. 그러고보면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늘 현재진행형입니다. 분명합니다. 과거는 오늘이자 내일입니다. 때문에 저자가 책 제목으로 이름한 역사와 책임은 실과 바늘처럼 늘 이어 써야 합니다.
"해방 후의 역사만 보더라도 세월호보다 더 끔찍하고 광범위한 참사를 당한 것이 여러 번이었다.
대통령이란 자가 다리 끊고 도망가고 선장이라는 자가 혼자서 속옷 바람으로 도망쳐도,
기관장, 행해사, 갑판장 등속이 다 무책임하게 도망쳐도 대한민국호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시민 대중들이 간직한 숨은 복원력 때문이다.
......
더 이상 대한민국호를 책임지지 않는 자들, 위기의 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자들에게 맡겨둘 수 없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간직한 이들이 움직여야 한다. 역사는 책임지는 사람들의 것이다."
(책의 머리말과 본문 중 일부)
각자도생各自圖生, 세월호 후 1년이 조금 지난 오늘, 중동에서 날아온 메르스에 또다시 '살아 나갈 방도를 제각기 꾀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슬픈 대한민국의 현실 앞에서 역사와 책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로잡지 못했기 때문에 이 책의 활자가 마르기도 전에 다시 반복되는 역사 앞에 부끄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역사를 책임지지 않고 살아남기만 한 사람으로 참 부끄럽습니다. 그래도 살겠다고 온라인 쇼핑몰을 뒤지다시피 해 마스크를 구입해 놓았지만, 정작 마스크를 쓸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해 살아남은 자로서 슬픔을 간직하고 움직이기 보다는 살아남은 자의 안도만 남아 역사를 책임지지 않고 '겨우 오늘만' 살아가는 소시민의 부끄럼이 앞서 50개입 마스크 박스를 뜯지도 않고 물끄러미 쳐다만 보았습니다.
[글과 사진,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