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발행된 본회퍼 기념 우표
신부와 신랑이 특별한 승리감으로 그들의 결혼일을 맞고 축하하는 것은 옳고 마땅한 일입니다. 모든 어려움, 장애, 방해, 의심, 그리고 불안들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정직하게 맞닥뜨려 극복했을 때 두 사람은 그들의 삶 가운데 가장 중요한 승리를 일구어내었습니다. 그들이 서로에게 “네”라고 말했을 때 그들은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자신들의 삶에 새로운 방향을 부여했으며, 두 사람이 평생 동반자로 살면서 맞이해야 할 모든 불확실함과 주저함에 대하여 흔쾌하고 자신 있게 저항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자유롭고 책임 있는 행동으로 그들은 살아갈 새로운 땅을 정복했습니다. 인간이 그런 위대한 일을 할 수 있고, 삶의 여정에서 조종간을 잡을 수 있는 그렇게 엄청난 자유와 힘을 부여받았다는 사실로 인해 모든 결혼은 기뻐해야 할 순간입니다. 지상의 인간들은 자신의 운명을 만들어 가는 일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락된 사실에 자부심을 가질 만 합니다. 이 자부심의 일부가 신부와 신랑의 행복에 틀림없이 기여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너무 조급하게 하나님의 뜻이나 인도하심에 관해 경건하게 말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 자리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 승리를 축하하는 두 사람 자신의 인간적 의지라는 사실은 분명하며, 그 점이 무시되어서는 안 됩니다. 두 사람이 선택했던 길은 처음부터 두 사람 자신이 선택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행했으며, 행하고 있는 일은 일차적으로 어떤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상당히 세속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두 사람 자신, 그리고 두 사람 만이 누구도 여러분들로부터 뺏을 수 없는 책임을 지게 됩니다. 좀더 분명하게 말해서, 자신들이 가게 될 여정의 성공에 대한 모든 책임은 신부와 신랑에게 있으며, 그런 책임에 수반된 모든 행복도 그들의 것입니다. 만약 두 사람이 오늘 “그것이 우리의 결단, 우리의 사랑, 우리의 길입니다”라고 담대하게 말할 수 없다면, 그들은 잘못된 경건 속에 피난처를 구하는 셈이 됩니다.
결혼은 서로에 대한 사랑 이상의 것입니다. 결혼은 더 높은 존엄과 힘을 가집니다. 왜냐하면 결혼은 하나님의 거룩한 의식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할 때 여러분은 단지 세상 속에 있는 여러분 자신의 두 자아만 봅니다. 그러나 결혼 속에서 여러분은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사슬의 고리입니다. ... 사랑할 때 여러분은 오직 자기 자신의 행복이라는 하늘만 봅니다. 그러나 결혼했을 때 여러분은 세상과 인류를 향한 책임 있는 자리에 놓이게 됩니다. 여러분의 사랑은 여러분 자신의 개인적인 소유입니다. 그러나 결혼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무엇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지위이며 직분입니다. 왕이 되기 위해서는 단지 다스리겠다는 의지만이 아니라 왕관이 있어야 합니다. 결혼도 그와 같아서 두 사람을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묶어놓는 일은 서로에 대한 사랑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랑은 여러분으로부터 나오지만 결혼은 위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하나님이 인간 위 저 높은 곳에 계시듯이 결혼이 가지는 고결함, 권리, 그리고 약속은 사랑의 고결함, 권리, 그리고 약속 저 위에 있습니다. 결혼을 지탱하는 것은 여러분의 사랑이 아닙니다. 이 순간부터 결혼이 여러분의 사랑을 지탱할 것입니다.
서로의 죄를 용서하는 가운데 더불어 사십시오. 왜냐하면 그것 없이는 인간 사이의 어떤 교제도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결혼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마십시오. 서로에게 책임을 돌리지 마십시오. 서로를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마십시오. 서로를 비난하지 마십시오. 있는 그대로를 서로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마음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매일 서로를 용서하십시오.
-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
후배 교사가 결혼을 앞두고 청첩장을 보내왔습니다. 그가 준 청첩장을 보고 있자니 19년전 제가 결혼을 앞두고 사람들에게 돌렸던 청첩장이 떠올랐습니다. 청첩장에 초대하는 글 말고도 당시 제게 큰 영향을 준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목사가 쓴 주례사의 일부를 실었지요. 그 주례사는 본회퍼 목사가 감옥에 있으면서 조카가 결혼할 때 편지로 써 준 결혼식 설교였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만한 주례사를 들어본 적도 읽어본 적도 없습니다. 결혼식 당일 집안의 대소사가 겹쳐 참석할 수 없는 까닭에 결혼을 앞둔 후배교사에게 무언가 짧은 축하의 메시지라도 전달하고 싶어 본회퍼가 남긴 주례사의 일부를 옮겨 편지를 써주었습니다. 여기에는 전문을 옮겨 실었습니다. '왕이 되기 위해서는 단지 다스리겠다는 의지만이 아니라 왕관이 있어야 합니다. ...... 결혼을 지탱하는 것은 여러분의 사랑이 아닙니다. 이 순간부터 결혼이 여러분의 사랑을 지탱할 것입니다.'라는 본회퍼 목사의 말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하나님 앞에 서약한 결혼으로 지켜온 안해와의 사랑을, 그리고 흠없는 가정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서럽게 아름다운 세월의 사월에 결혼하는 모든 신랑과 신부를 축복합니다.
[본회퍼의 주례사를 옮겨 적고 이에 더해 바람이 몇 마디를 보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