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버튼하나만 누르면 난방이 되는 시절이 아닌, 겨울에 급당(학급 당번)을 맡으면 등교하자마자 제일 먼저 갈탄이나 나무 장작을 받아와 교실 안에 난로를 피워야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마 40대 중반이후의 나이라면 겪었을 한 겨울 교실의 풍경이 그립지 않은가요. 급당이 피운 난로 위에 3~4리터 이상 되는 큰 양은주전자기 올려져 있고 그 곁을 빙둘러 도시락이 겹겹이 쌓여져 있습니다. 난로에 가장 가까이 앉은 친구는 수시로 도시락의 상하 순서를 바꿔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아이는 필시 점심시간에 시커멓게 타버린 도시락을 먹게 되니까요. 난로에 불을 지피고 관리하는게 조금 귀찮긴 합니다. 화재나 화상의 위험도 늘 뒤따르죠. 하지만 교실 한 중앙에 피워놓은 난로가 주는 감성적인, 많은 순기능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땔감을 수령해오고 재를 치우는 행위 자체가 갖는 수고 또한 값지지만 불을 어떻게 다뤄야 하고 불 앞에서 얼마나 겸손해져야 하는지를 배우는 것 또한 참 의미있는 교육의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교실 안에 다시 난로를 들여놓는 건 어떨까 음험한 상상을 해봅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건 집 안에 작은 난로가 있어 수시로 불을 땔 수 있는 쏠쏠한 재미를 갖게 되면서 부터였습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불을 피우고 부지깽이로 불길을 내면서 활활 타오르는 불을 바라보는 일은 참 재미있습니다. 불을 붙이기 위해 처음엔 신문지나 재활용 쓰레기로 배출할 라면 박스 등을 이용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뒷산에 올라가면 쉽게 구할 수 있는 마른 나뭇가지를 줏어와 불쏘시개로 씁니다. 바짝 마른 나무는 참 잘 탑니다. 그리고 재를 남기지 않고 거의 완전히 연소되기 때문에 불쏘시개로 쓰기에 좋습니다. 종이 한 장에 불을 붙여 나뭇가지 밑에 놓으면 금세 활활 타오르고 굵은 참나무 장작에 옮겨 붙습니다. 참나무는 화력이 좋고 오래 타며 그을음이 적게 납니다. 그래서 장작용으로 안성마춤이지요. 그렇지만 참나무에 여간해서는 바로 불을 붙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불쏘시개용으로 사용하는 마른 나뭇가지가 필요합니다. 물론 마른 나뭇가지만로는 오랫동안 불을 지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기세좋게 타오르기 때문에 굵은 장작에 불을 옮겨 붙일 수가 있습니다. 나무도 제각각 쓰임새가 다른 것이죠.
아이들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떤 아이는 마른 나뭇가지처럼 순간적으로 활활 타오르는가 특성이 있는가 하면 어떤 아이는 처음에는 불이 잘 붙진 않지만 한번 불으면 오래도록 온기를 만들어 내는 참나무 같기도 하죠. 물론 금방 타올랐다가 사그라지는 마른 나뭇가지 같은 아이보다는 오래도록 진중하게 타오르는 참나무같은 아이가 더 좋을 수 있겠습니다. 그게 일반적인 상식이겠지요. 어쩌면 이 비유도 그런 교훈적인 메시지를 담는 것으로 결론을 내는 것이 마땅하겠지요. 하지만 저마다 지닌 몫이 다르지 않을까요. 제 한 몸을 순식간에 활활 태워버리는 나뭇가지가 없다면 굵디 굵은 참나무 장작이 아무리 좋다한들 불이 붙일 수가 있을까요. 15세 전환기를 겪는 아이들을 보며 중2병이니 하는 말로 싸잡아 환자 취급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이 진중하지 못하고 마른 나뭇가지처럼 늘 토닥 토닥 소란스럽지만 어쩌면 그런 아이들이 만들어 내는 열기가 있기에 이 세상은 아직은 따듯한 불길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토닥 토닥 타오르며 소리를 내는 아이들이 없다면, 그래서 은근한 참나무 장작과도 같은 어른 아이들만 있다면 불이 제대로 붙을 수 있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새해에는 토닥 토닥 소리내며 타오르는 아이들의 생활한 모습을 더 많이 보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그렇게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축복인 이 땅에서는...
어른들은 이런 저런 나무들에 옮겨 붙은 불길이 사그라들지 않도록 나무를 들추어 바람길을 내주기도 하고 이리 저리 불길을 내주는 부지깽이와 같은 역할을 할 나름입니다.
[글과 사진,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