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한 바퀴 거리가 4만km 조금 넘는다면 나는 이 차와 함께 지구를 두 바퀴는 돈 셈이다.
지구를 두 바퀴 돈다면, 한번은 적도를 중심으로 횡으로 돌고, 또 한번은 남극과 북극을 종으로 돌아본다.
걸어서 지구를 한 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을 25년 정도 잡는다면 내 나이 내년이면 오십이니 두 바퀴는 돈 셈이다.
물론 갓난 아기 때 그렇게 걸을 수 있겠냐며 따지고 들면 별로 할말은 없지만
얼마 전 퇴근 길에 차량미터기에 89999km가 찍힌 걸 보고선 이윽고 90000km를 넘자마자
길 옆에 잠깐 정차한 후 기어코 이 사진을 손에 넣고야 말았다.
그리곤 9만km나 함께 했던 이런저런 추억을 더듬다 기어이 지구 두 바퀴를 도는 즐거운 상상에 이르렀던 것이다.
지구가 스스로 한 바퀴 휭하니 도는데 걸리는 시간은 하루면 충분하지만
두 발로 걸어서 한 바퀴를 돌려면 25년의 세월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세월을 지내고 보니 이또한 하루에 지나지 않은 것은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정량화 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하루의 정량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살아온 세월동안 켜켜이 나이테로 수 놓인
사람과 지식과 경험 등 셀 수 없는 의미들이 있지만 이또한 내 것이 아님을 알기에
지금 여기에서 새롭게 걸어갈 지구 한 바퀴 만큼의 삶을 벗들과 함께 걸으며 뜨겁게 껴안고 살아갈 것이다.
[글과 사진,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