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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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표 
April 2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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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때보다 지난 4월11일 토요일자 신문이 기다려진건 순전히 <이진순의 열림> 꼭지 때문이었다.
1주 전에 '아침이슬 그 사람' 김민기 (상)에 이은 후속 인터뷰 기사를 한 주 내내 기다렸다.
20년 넘게 극단 학전을 이끌며 <지하철 1호선> 공연 15년 롱런의 경이적인 기록을 세운 연출가였지만
그 자신 대중적으로나 상업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싫어했기에 그를 인터뷰한 기사는 많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속내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던 차에 열린 사람들과 어울림(열림) 인터뷰를 하고
격주로 그 이야기를 싣는 이진순박사가 기어코 그를 만났던 것이다.
사실 쟁이라고 하면 김민기만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1970년대 청년문화의 원형질을 제공한 국내 최초의 싱어송라이터,
콘서트 한번 안 했는데 한국사의 주요 변곡점마다 그의 노래가 불린 사람,
공장 노동자로 농사꾼으로 막장 탄부로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그 스스로 ‘아침이슬’과 ‘상록수’가 되었던 사람,
미술에서 시작해서 노래와 연극과 문학을 아우르며 한국 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사람.
김민기(64), 그는 동시대 그 누구보다도 밀도 높은 삶을 살아왔"던 그는 본인의 말처럼
돈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물건을 만드는 사람' 쟁이기 때문에 돈 안되는 일만 골라서 해왔다.
 
요즘 세상에 이런 사람이 또 있을까. 작은 예수와 같이 살아왔고 살아가는,
그의 모습에서 노래하는 나무의 원형질을 발견했다. 
기다렸던 그의 후속 인터뷰를 읽어가다 거의 마지막 부분을 읽어내려갈 즈음, 
그의 숨표 이야기에 나는 숨이 멎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 가운데 하나 바꾸고 싶은 게 있어. ‘쉼표’라는 말인데, 보통 제일 익숙한 게 4분의 4박자 네 마디의 악보인데, 대부분 그 넷째 마디 끝에 4분 쉼표가 하나 있지. 근데 이게 쉼표가 아니라 ‘숨표’라고. 내가 수영을 좋아하는데 수영하다 잠깐 올라오는 시간에 숨을 쉬는 거야. 마지막 16분의 1은 그 이전의 16분의 15를 내뱉기 위해서 들이쉬는 거거든. 쉬는 게 아니고 전체를 살리기 위한 숨표! 그러니까 16분의 1은 16분의 15랑 등가라고. 마이너리티(소수자)라고 보는데 마이너리티가 아니고. 복지가 그냥 퍼주는 게 아니란 얘기. 아, 근데 말이 길다. 내가 취했네.(웃음)”
 
쉼표가 아니라 '숨표'라는 그 말이 낯선 것만은 아니다.
나또한 내가 속한 학교의 교육과정을 만드는 기본원리로 '몫숨'이라 명명해 숨을 강조했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몫이 있고 이를 잘 찾게 도와 그 몫을 다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구에게나 하느님이 불어 넣어주신 생생하고 기운 찬 숨(창2:7)이 있고 그 숨을 회복하도록 돕는 교육이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만들어진 '몫숨'을 다하는 교육을 일관되게 추구해 왔다.
그러기에 숨을 제대로 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해왔다.
그런데 김민기는 이에 더해 전체를 살리기 위한 숨표, 그래서 1/16은 15/16과 등가라도 이야기 한다.
 
작곡을 전공한 안해가 평소에 늘 입버릇처럼 이야기했던 말이 생각난다.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다 보면 도대체 '쉼표'를 너무 무시하는거야. 쉼표도 엄연히 악곡의 일부인데..."
그런데 알고보니 쉼표는 곡의 일부가 아니라 절반이지 않은가.
노래를 부를 때 조차 충분히 쉬지 못하고 쫓기며 불러야 하는 아이들,
숨을 쉬어야 할 때 충분히 쉬지 못하는 교육, 그리고 이를 강요하는 학부모, 대학, 사회.
 
이제 우리는 어떻게 노래를 불러야 할까.  이러다가,
전체를 살리기 위한 숨표를 인정하기는 커녕 쉼표로도 읽지 못하는, 그래서
결국에는 내 숨도 못 가눈 채 신음인 듯, 비명인 듯 악만 질러대는 괴물이 가득한 세상을 만드는 건 아닐까.  
 
[글과 그림,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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