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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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한과 진공관 앰프 
January 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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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한小寒이다. 1년 중 가장 춥다는 소한의 아침이다. 절기 명칭으로 보면 대한이 가장 추운 것 같지만 실은 소한 때가 가장 춥단다. 그래서 오죽하면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 갔다가 얼어 죽었다'거나 '소한 추위는 꾸어다가라도 한다'는 속담이 비롯된 것이 아니겠나. 그런데 그런 소한의 추위를 추계리에서 처음 맞는데... 어찌나 춥다. 그런데 갑자기 지난 가을 발코니에 내어두고 켜두었던 진공관 앰프가 떠오른건 왜일까.
 
사실 나의 음악 취향은 잡식이다. 클래식부터 가요에 이르기까지 귀에 꽂히는 음악이면 장르를 불문하고 좋아한다. 사실 시골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그닥 문화적 혜택을 받고 자라진 못했다. 청소년 시절, 교회에서 성가대를 하거나 경연대회를 앞두고 연습한 정도가 가장 높은 수준의 음악적 향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던 중 중학교 3학년 때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오디오(당시 전축이라고 불렸던) 턴테이블에서 흘러나오는 베에토벤 5번 교향곡 '운명'을 운명처럼 만나면서 클래식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LP을 들을만한 기기가 없었던 나는 그 곡을 카셋트 테이프로 녹음해 와서는 작은 스피커 하나만 달랑 달려있는 카셋트 플레이어를 통해 밤새 몇 번이고 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음질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심장을 두드리며 다가오는 1악장 서주부터 4악장 피날레까지 거의 30분에 가까운 운명교향곡을 거의 매일 반복해 들었다.
 
치기어린 당시의 그런 열정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는 지금도 명확하지 않다. 다만 무언가에 깊이 몰입하고 싶은 때였고 그 대상이 운명처럼 클래식 음악을 통해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암튼 그렇게 열심히 반복해 듣게 되면서 내 귀가 트이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도 그럴것이 5번 교향곡 전 악장을 거의 외우다시피 들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지휘자에 따른 연주의 차이까지 구분해낼 수 있었다.
 
그런 경험이 있었던 덕분에 대학을 다닐 때엔 클래식 음악동호회 활동을 하며 좀 더 체계적으로 클래식 공부를 하게 되었고, 점심 밥 한 끼와 클래식 음반 하나를 맞바꾸는 매니아적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사실 가난한 서울 유학생에게 더 가난한 시골의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한 달 용돈이란게 고작 밥 몇 끼를 사먹을 수 있는 정도였지만, 밥그릇 대신 하나씩 하나씩 늘어나는 클래식 음반과 시집을 보면서 마음은 더 풍성한 시기를 보냈다. 그렇게 밥과 바꾸며 소장하게 된 음악과 시는 내 삶과 영혼의 중요한 자양분이 되었다.그래서 지금도 이사를 앞두고 짐을 줄여달라는 안해의 성화에 못 견뎌 책꽂이에 꽂힌 음반과 책 등을 바라보다 결국은 한 두 해가 지나도 잘 입지 않는 옷가지를 선책하게 되고 만다.
 
음악을 좋아하다보면 결국 음악을 원음에 가깝게 재생해주는 오디오에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마련이다. 그런데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하지는 못해 대학 때 과외를 하며 생긴 수입으로 큰 맘 먹고 구입한 인켈에서 나온 분리형 오디오를 20년 넘게 짊어지고 다녔다. 물론 오디어 잡지나 혹은 동호회에서 거론되는 하이엔드급의 명기에 욕심이 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작은 스피커 하나만 달랑 달린 카셋트에 비하면 이 정도의 오디오도 과분하다는 생각과 함께, 결국은 기기 이전에 음악을 듣고 수용하는 이의 마음이 중요하지 않을까라는 나름의 철학이 있었다.
 
그러던 중 몇 해 전에 작은 진공관 앰프 하나를 구입하게 되었다. 진공관 앰프란게 전기를 빛으로 바꾸어 빌의 울림으로 소리를 표현하기 때문에 무척이나 따듯하고 부드러운 소리를 만들어주기 때문에 예전부터 구입하고 싶은 거였다. 출력을 그닥 크게 내는 앰프는 아니라서 작은 북셀프 스피커에 물려 들어야 하는 단점이 있기는 했지만 이 진공관 앰프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지난 가을, 낙엽이 춤추는 주말 오후 내내 정원 발코니에 앉아 빛과 소리를 동시에 내는 이 작은 진공관 앰프가 있어 참 행복했다.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왔다 도망간다는 '소한'의 찬 바람을 견디는 뜰의 앙상한 나무를 바라보면서도 예전처럼 마음이 쓸쓸해지지 않는 것은 어쩌면 가을 내내 따듯한 음악을 함께 들으며 내내 행복하게 노래하는 나무였음을 아는 까닭이다. 비록 오늘 찬 바람이 불어오고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고통이 찾아오더라도 지난 시절 함께 노래한 벗들을 기억하며 이 또한 흘러가리라 생각하자. 그리고 차갑게 언 땅 밑에서 봄의 생명을 움 틔우기 위해 숨 죽이고 인고하는 꿈꾸는 씨앗을 기억하자. 그리고,
 
전기를 빛으로 바꾸어 빛의 울림으로 따듯한 소리를 만들어내는 진공관 앰프처럼 내게 전해오는 차가운 디지털 신호를 따듯한 아날로그 빛으로 만들어 증폭시키는 삶을 살자. 그런 삶을 통해 전해지는 사랑만이 이 세상을 살릴 수 있다. 오직 사랑만이...
 
[글과 사진,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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