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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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살아있는 모든 것을 위하여 
October 1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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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추석, 문경새재 들머리 광장에서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아이들을 담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입니다(E.H. 카). 따라서 그 대화는 다양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누군가 자신만의 생각이 옳다고 해서 일방적인 해석과 생각을 강요하면 안됩니다. 그런 강요는 폭력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고思考의 폭력과도 같은, 설마했던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한다는 국정화 소식이 보도되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국가 가운데에서도 국정 교과서를 발행하는 국가가 세 곳 뿐인데 기어코 '올바른 교과서'라 명명한 교육부 국정 교과서를 발행하겠다는 교육부의 행정예고를 눈으로 확인합니다.
 
그래서 답답해진 마음에 서둘러 신경림의 '새재'를 펼쳐 들었습니다.
 
며칠 전, 내가 태어나 자라온 문경에서 난데없이 세계군인체육대회를 치른다는 소식에 엉겹결에 당신의 시집을 책꽃이에서 꺼내어 먼지만 털어내고 책상머리에 놓아두었죠. 그러곤 시집을 들춰 보지도 않다가 오늘 아침 올바르지도 않은 '올바른 교과서'를 읽어야 할지도 모를 어린 아이들을 생각하니 가슴 저 밑둥에서 올라오는 부끄러움이 생겨 당신을 읽습니다. 나도 모르게 스멀스멀  세속의 때가 덮여져 어느 새 그 세기가 무뎌진 심신을 갈고 닦기 위해 시집을 내쳐 읽습니다. 흐리멍텅해진 정신의 운무를 걷어내기 위해 어른의 예언을 읽습니다. 어른의 욕심에 기이해 생긴 잘못된 일을 바로잡기 위해 광화문에서 시위를 하다 연행된 젊은이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시를 읽는 내내 몸이 울었습니다. 
 
자고 누운 네 방에 낡은 옷가지들
라면봉지와 쭈그러진 냄비
나는 부끄러웠다 어린 누이야
너희들의 힘으로 살쪄가는 거리
너희들의 땀으로 기름져가는 도시
오히려 그것들이 너희들을 조롱하고
오직 가난만이 죄악이라 협박할 때
나는 부끄러웠다 어린 누이야
벚꽃이 활짝 핀 공장 담벽 안
후지레한 초록색 작업복에 감겨
꿈 대신 분노의 눈물을 삼킬 때
나는 부끄러웠다 어린 누이야
투박한 손마디에 얼룩진 기름때
빛 바랜 네 얼굴에 생활의 흠집
야윈 어깨에 맨 삶의 어려움
나는 부끄러웠다 어린 누이야 (후략) 
 
                                - 신경림의 시집 <새재> (창작과 비평사) '나는 부끄러웠다 어린 누이야' 중에서
 
 거대한 맘몬주의에 농락당하며 그나마 지푸라기만한 삶의 결기조차 찾아볼 수 없는 이 땅의 늙은 어른들에게 꿈을 거세당하고, 그 알량한 학벌을 위해 청년이 되기도 전에 이미 채무자 신세가 되어 알바로 전전해야 한다는 신문기사를 읽으면서도 이렇게까지 미안하고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정치적인 욕심으로 다음세대의 역사교육마저 통째로 왜곡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데도 교육현장에서 무기력하게 한숨만 쉬고 있는 내 모습이 참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새재를 거닐며, 이 땅의 굽이 굽이 농로를 걸으며 노래한 시인을 찾지 않고서는 이 수치를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당신의 시를 한 편 한 편 읽어가던 중
 
 어른의 시를 한 편 한 편 읽어가며 마음을 진정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노래한 것처럼 이 세상의 숨은 모습을 하늘에 알리고 하늘의 고운 숨결을 이 땅에 뿌리기 위하여 함께 춤을 춥니다. '올바른 교과서'의 모순형용을 역설의 미학으로 승화시켜야 하듯  지금의 이 눈물과 한숨과 통곡을 모아 어디선가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애쓰는 작은 자들과 함께 걷고, 또 새로운 숲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이 땅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위하여
더불어 숨 쉬고 사는 모든 것을 위하여
내 터를 아름답게 만들겠다 죽어간 것들을 위하여
이 땅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는 것들을 위하여
땅 속에서 깊고 넓게 숨어 있는 것들을 위하여
언젠가 힘차게 솟아오를 것들을 위하여
 
산과 더불어 바다와 더불어 강과 더불어
나무와 풀과 꽃과 바위와 더불어
짐승과 새와 벌나비와 더불어
이땅에  땀 흘려 살아가고 있는 사람과 더불어
이 땅에 힘들게 살다 간 사람들과 더불어
이 땅에 언제까지고 살아갈 사람들과 더불어
 
이 땅의 기운을 온 누리에 퍼뜨리기 위하여
이 땅의 뜻을 방방곡곡 전하기 위하여
이 땅의 소망을 하늘에도 고하기 위하여
 
산과 들과 도시와 시골을 구석구석 밟으면서
기름진 곳 메마른 곳 고루고루 누비면서
언 손 굽은 등 두루두루 어르면서
땅을 차고 올라 별과 달에 이르면서
이 땅의 숨은 모습 하늘에 알리면서
하늘의 고운 숨결 이 땅에 뿌리면서
 
더불어, 이 땅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새와 더불어 나비와 더불어
사랑 있는 것들 죽어간 것들과 더불어
나는 추리 나의 춤을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세상 끝까지 하늘끝까지 날아오르면서
눈물과 더불어 한숨과 더불어 통곡과 더불어
 
                                      - 신경림, '이 땅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위하여' 전문 -
 
[신경림 시인의 시, 바람의 글과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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