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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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다시 읽다 
May 1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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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로 삼고픈 어른이 있다. 근데 정작 이분은 멘토이기를 정중하게 거절한다. 직간접으로 알게된 어른 중 진짜 멘토로 삼고픈 분들은 대체로 이와 같은 반응을 보인다. 구닥다리 어른은 버리라는 것이다. 최근에 언론을 통해 알게 된 효암학원 이사장인 채현국선생님도 그런 분 중의 하나다. 하지만 원조가 있다. 신영복선생님이다. 그 분이 쓴 편지글을 모아 엮은 책 한 권으로 내 지나온 삶을 성찰하게 되었고, 살아갈 남은 생애를 소망하게 되었다. 그것도 화석화한 고정된 철이 아니라 북극성을 향해 가늘게, 하지만 끊임없이 떨리는 지남철과 같이 올곧은 삶을 견지하게 도왔다.

그는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육군사관학교에서 교관으로 경제힉을 가르치던 중 통혁당 사건으로 사형을 언도받고, 이후 무기수로, 다시 특별사면으로 1988년 8월에 가석방되어 나오기까지 20년 20일의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그런 그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이 시대의 대표적 스승이자 진정한 멘토라 칭하지만 정작에 본인은 이런 언론의 과도한 관심에 손사레를 치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

“거대담론도 사라지고 존경했던 사람들의 추락도 많이 보고 하니까 뭔가 사표(師表)로 삼을 만한 대상을 성급하게 구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사표나 스승이라는 건 당대에는 존립할 수 없는 겁니다. 어떤 개인의 인격 속에 모든 게 다 들어간 사표가 있다면 공부하긴 참 편하겠죠. 그렇지만 그건 낡은 생각이에요. 집단지성 같은 게 필요하고 집단지성을 위한 공간을, 그 진지를 어떻게 만들 건가가 앞으로의 지식인들이 핵심적으로 고민할 과제예요"

그런 그가 마지막 강의라는 부제가 붙은 '담론談論'이란 책을 펴냈다. 언젠가 선생님이 암 진단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 뜬 소문같이 들려온 이야기에 이번 책의 부제가 곁들여져 정말로 선생님의 마지막 강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담론'을 서둘러 구매했다. 그러고선 문득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오래 묵힌 간장독에서에서 장을 꺼내듯 책꽂이에서 뽑아 들었다. 그 중 읽는 내내 온몸에 전율이 일었던, 그래서 예전에 국어선생으로 근무하던 여고에서 통과의례 마냥 여름방학 앞둔 6, 7월이면 낭독해주곤 했던 '여름징역살이'를 다시금 찬찬히 읽는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1990, 햇빛출판사) 중 '여름징역살이'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곤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는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가지 스무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기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됩니다
.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
더우기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생존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미워하는 대상이 이성적으로 옳게 파악되지 못하고 말초 감각에 의하여 그릇되게 파악되고 있다는 것
,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증오의 감정과 대상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혐오에 있습니다
.

자기의 가장 가까운 사람을 향하여 키우는 "부당한 증오"
는 비단 여름 잠자리에만 고유한 것이 아니라
없이 사는 사람들의 생활 도처에서 발견됩니다
.
이를 두고 성급한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의 도덕성의 문제로 받아들여
그 인성을 탓하려 들지도 모릅니다
.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 내일 온다 온다하던 비한줄금 내리고 나면
노염(老炎)도 더는 버티지 못한 줄 알고 있으며
,
머지않아 조석(朝夕)의 추량(秋凉)은 우리들끼리 서로 키워왔던 불행한 증오를 서서히 거두어가고
,
그 상처의 자리에서 이웃들의 "따뜻한 가슴"을 깨닫게 해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

그리고 추수(秋水)처럼 정갈하고 냉철한 인식(認識)을 일깨워줄 것임을 또한 알고 있습니다
.

다사했던 귀휴(歸休) 1
주일의 일들도 이 여름이 지나고 나면
아마 한장의 명함판 사진으로 정리되리라 믿습니다
.
변함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
친정부모님과 동생들께도 안부전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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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나는 오늘 아침부터, 아베총리나 김정은 때문에 속 상해하거나 하루종일 기분이 꿀꿀해지는 것이 아니다. 우선은 매일 아침 밥상에서 얼굴을 맞대는 가족과, 괜한 일로 트집잡는 회사 동료나 상사와, 저녁 층간 소음으로 관계과 소원해진 이웃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속이 끓는다. 때문에 여름징역살이에서 경고하듯 살 부비고 사는 곁의 사람에 대한 까닭모를 부당한 증오는 버리고 따듯한 마음을 지녀야 할 것이다. 결국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같이 나눌 이웃을 만드는 일은 너무도 중요하다. 그 시작은 이웃을 사랑하는데서 출발한다. 이것이 신영복선생님이 말씀한 ‘더불어숲’의 정신인 것. 이를 위해 그의 말처럼, 변방의 자유로움과 창조성으로 과정을 즐거이 하자.
 
“어쩌겠어요? 그렇게 비대칭적으로 자기를 강화하고 군림하는 집단은 다 자기 이유가 있는데. 그런데 그런 중심부 집단은 그게 또 약점이 돼요. 중심부는 변방의 자유로움과 창조성이 없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어요. 인류문명의 중심은 부단히 변방에서 변방으로 옮겨왔잖아요. 그런데 이런 역사적 변화는 그렇게 쉽게 진행되는 게 아니에요. 역사의 장기성과 굴곡성을 생각하면, 가시적 성과나 목표 달성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과정 자체를 아름답게, 자부심 있게, 그 자체를 즐거운 것으로 만드는 게 중요해요. 왜냐면 그래야 오래 버티니까. 작은 숲(공동체)을 많이 만들어서 서로 위로도 하고, 작은 약속도 하고, 그 ‘인간적인 과정’을 잘 관리하면서 가는 것!”

[글과 사진,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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