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서나 경영서 못지 않게 넘쳐나는 책이 학부모를 겨냥해 기획된 자녀교육 관련 서적이다.
영어교육, 자기주도학습, 효과적인 학습법, 창의교육, 진학과 진로 등
저마다 어떻게 하면 자녀를 이 세상에서 잘(?) 살아갈 수 있게 키울 수 있나,
그 방법(How to do)을 상세하게 알려주는 책들이다.일종의 자녀교육 맞춤 매뉴얼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이런 책의 홍보를 위해 쓰여진 광고문을 읽다보면
나는, 자녀교육에는 무관심하고 게으른 아빠가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선 좋은 부모 노릇하는게 참 쉽지 않다.
자녀의 숙제를 도와야 하는 도우미 이외 각 시기마다 필요한 학습정보를 준비하고 제공해줘야 할
학습코칭의 역할도 해야하고, 또 각 대학에서 요구하는 진학정보를 꿰뚫고 있어야 하며
중장기적 비전과 진로를 위한 삶의 멘토 역할도 감당해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좋은 아빠로 일상에서 이 모든 역할을 너끈히 감당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나 또한 변화와 성장을 위해 몸부림치는 부족한 사람이기에
좋은 아빠로서는 늘 기대에 못미친다는 자괴감이 앞설 때가 많다.
무지한 아빠는 발디딜 틈이 없다. 그저 울트라 슈퍼 파워의 능력을 요구한다.
그래서 '좋은아빠'를 위한 지침서는 늘 부담스런 매뉴얼로 다가온다.
자녀의 양육을 위해 좋은 부모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뉴얼이 넘쳐난다.
그런데 과연 자녀를 잘 키우기에 적합하고 절대적인 매뉴얼이 존재할까.
양육이란, 교육이란 과연 그런 매뉴얼대로 따라하면 잘 될 수 있는 것일까.
오히려 이런 매뉴얼적 접근을 일삼는 자녀교육 지침서를 쌓아두고 읽는 것보다
하나, 둘, 셋... 자녀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하라고 상세하게 나열한 책보다
삶과 교육에 대한 깊은 성찰과 철학적 고민을 던져주는 그런 책이 더 낫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14세 아이를 가진 부모에게"란 책은 14세 아이를 가진 부모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부모들과 교사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와 교육 환경이나 상황이 거의 다르지 않은 일본의 두 지성이 만나
'아이와 부모', '양육과 교육'에 대해 성찰하고 근원적인 대안이 될 수 있는 대담을 담았다.
이 책의 공동 저자인 우치다 타츠루가 한국의 독자들에게 남긴 말을 옮기면,
한국의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치다 타츠루입니다.
<14세 아이를 가진 부모들에게> 한국어판이 나오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저와 한국의 독자들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지만 ‘교육을 통해서
다음 세대를 지키고 싶다, 아이들을 시장의 소모품이 되게 하고 싶지 않다’는
바람을 갖고 있고,
‘전문 지식은 우선 비전문가를 위해 사용해야지,
전문가끼리 우열을 다투기 위해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동의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각각의 사회에서 소수파에 해당하지만, 이 점에서는 국경을 넘어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정신과 의사인 나코시
야스후미 선생님과 나눈 대담을 수록한 것입니다.
각자 교육과 의료 현장에서 얻은 지견에 기초해서 ‘일본의 가족’에 대해서 지금 어떤 증상들이
나타나고 있는지,
왜 그것이 발병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마지막에 두 사람이 도달한 결론은 ‘일본인 전체의 심리적
미성숙이 이런 모든 현상에 공통하는 원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미성숙’은 ‘병적’인 양태를 취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는 병이
아닙니다. 성숙하면 되니까요.
일본인에게 필요한 것은 ‘치료’가 아니라 ‘성숙’이라는 것이, 아마 이 책을 통해 저희가 이끌어 낸 실천적 결론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한국의 독자들이 저희 책을 읽어 주시는 이유도 한국 사회 역시 일본과 상황이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며,
이런 점에서도
뜻이 같은 분들끼리 공감과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전문적 지식이 있다는 것'을 '눈이 좋다'거나 '힘이 있다'는 것과 같은 능력으로 보고,
'눈이 좋은 사람'들만 모여서 '어디까지 멀리 볼 수 있는가'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눈이 나쁜 사람'을 위해서 멀리 봐 주는 것이 훨씬 중요한 것처럼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사고하고 일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100% 공감한다.
물론 그런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소수에 지나지 않기에 학교교육에서도 시장원리를 적용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낙망하지는 말자.
그의 제안처럼 이런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들의 연대와 공감이 확산되며 형성하는
'글로벌적 연결'은 언젠가는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글,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