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쪽]중요한 것은 그분이 인간의 결핍을 절대적 단계까지 느끼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분이 우리의 고통 중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초월하여' 계시지 않고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이다. - 크리스천 와이먼(시인), <My Bright Abyss> 중에서
[173쪽]사랑해본 적이 전혀 없는 것보다 사랑했다가 그 사랑의 대상을 잃는게 더 낫다. - 알프레드 로드 데니스(영국의 계관시인)
[176쪽]내가 인생의 지극히 작은 것들까지도 모두 '선물'이라는 것을 기억하도록, 그리고 그 선물을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이 '감사'라는 것을 기억하도록 나를 도와주십시오. - 존 클레이풀 John Claypool의 <Tracks of Fellow Struggler> 중에서
[176~177쪽]그 무엇도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를 보생해줄 수는 없다. 그러므로 그런 것을 찾으려고 애쓰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끝까지 견디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처음에는 아주 가혹하게 느껴지겠지만 결국에는 큰 위로가 될 것이다. 이미 떠난 사람의 공백은 채워지지 않고 남아 있지만 우리 사이의 유대를 유지해준다. 하나님께서 그 공백을 메워주신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분은 메워주시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신다. 그 렇기에 우리는 고통이라는 대가를 지불하면서도 우리의 과거의 서로 간의 교제를 계속 살아 있게 할 수 있다. - 디트리히 본회퍼
[180~181쪽]하나님은 선하시지만 우리 인간은 자유롭다. 자유로운 존재로서 인간은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데 그 선택이 세상을 만들어간다. 코네티컷의 희생자 한 명 한 명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유일하고 귀한 생명이었다. 하지만 폭력이라는 악은 일상적으로 늘 존재했다. 어느 시대나 폭력이 넘친다. 왜 하나님께서 전쟁을 허락하시는가? 왜 굶주림을 허락하시는가? 우리는 역사나 경제나 여타의 어떤 결정적 영향력이 만들어낸 불가피한 산물이 아니다. 우리는 자유롭다. 그래서 우리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것이나 고통에 대해 책임이 있다. 왜 하나님이 사악함을 내버려두시는가? 그 이유는 우리가, 또는 우리와 똑같은 다른 사람들이 사악함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악함을 제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금 이 순간부터 다르게 사는 것이다. - 찰스 채풋(덴버의 대주교)
대체 휴일이 처음으로 적용된 이번 추석, 그래서 무려 닷새 동안 가을 휴가를 갖게 되었다.
물론 대체 휴가를 적용하지 않는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분들이나 기타 근로자들에겐
이런 좋은 쉼을 나 혼자만 누리는 것 같아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팽목항에 가보리란 마음뿐이었지 결국 추석 교통상황을 핑계로
방에 콕 박혀있던 나의 여전한 안일함에 약간은 괴로워하면서도
모처럼 갖는 달콤한 휴식을 떨쳐낼 수는 없었다. 그만큼 나는 평범한 소시민이기에
가화家和만사성萬事成을 되뇌이며 나를 합리화시켰고,
다만 틈틈히 책을 읽으며 나를 성찰하는 것으로 부채의식을 털어내며 자족했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바로 전 금요일 오전에 구매한 책을 토요일에 받아보는 기적을 통해
"하나님, 제게 왜 이러세요?"를 비롯해 대략 세 권의 책을 탐독할 수 있었지만
그건 기적이 아니라 주말은 물론이거니와 밤낮없이 배송을 위해
자신의 최선을 다하는 택배기사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임을 깨닫고선
연휴를 앞두고 책 구매를 신청한 나의 사려깊지 못한 행동을 반성했다.
물론 예상 배송일이 추석 연휴가 끝난 후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신청한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필립 얀시의 이번 신간을 읽으면서 여러 면에서 위로를 받았다.
특히 <세월호와 역사의 고통에 신학이 답하다>(조석민 외, 대장간)와 함께 읽으면서
내 안에 풀리지 않았던 여러 궁금함과 답답함을 해결할 수 있어서 좋았다.
어줍잖게 서평을 쓰는 것보다 그 중에 몇 구절을 가려 뽑아 옮기는 것이 이 책을 더 잘 소개하는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옮겨 놓고보니 의도한 것이 아닌데 필립 얀시의 말보다 그가 인용한 다른 사람의 말을 가려 뽑은 것은,
좋은 작가는 먼저 다른 사람의 글을 잘 읽고 다른 이의 말을 잘 듣는 것임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