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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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한 국어교육 
December 1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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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한 어줍잖은 내 생각을 곁들이는 것보다는 초판 서문과, 초판을 낸 출판사의 폐업으로 다시 책을 내면서 쓴 지은이의 개정증보판 서문의 일부를 옮겨 적는 것이 좋겠다. 왜냐면 서문에 담은 그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이다. 나또한 국어교사를 지냈고, 제도권 학교 현장에서 '교육 불가능'의 문제를 가지고 허우적댔으며, 그런 문제의식에 바탕해 그와 영역은 다르지만 삶으로 살아내기 위해 몸부림치며 실천하는 길을 걷고 있다는 점에서 강한 동지애를 느낀다.
그렇다고 해서 이 땅의 모든 교사가 학교를 뛰쳐나오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만큼 실천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학교 밖에서 몸부림치는 교사도 필요하지만 학교 안에서 씨름하는 교사도 있어야 한다. 다만 제도권 안에서 보장한 여러 안정성이 안일함으로 쉬 변할 수 있기에 늘 깨어 성찰하고 도전하는 교사여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쉽게 타협하며 결국 삶을 위한 교육으로 확장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도권 안과 밖으로 경계하지 않고 서로 이해하며 연대하는 넉넉함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것은 다음세대를 살아갈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긍휼, 이것보다 앞세울 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진영의 논리도, 기법의 모색도, 모두 다음 세대를 위한 애통없이는, 그 흉년의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 대한 사랑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초판 서문 중에서]
"수업 시간마다 내가 싸워야 했던 가장 큰 적은 아이들의 졸음이었다. 내가 들어가는 한 시간의 국어 수업은 아이들에게는 하루 평균 12시간 학습 노동 가운데 한 시간일 뿐이었으며, 아이들은 어떤 수업이건 잠들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다 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3쯤 되면 아이들은 국어 과목에서만도 초,중,고등학교 합쳐서 수십 권의 문제집을 풀어 왔지만, 자신이 겪었던 내밀한 사랑의 감정을 한 번도 글로 옮겨 본 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다섯 개 중에 틀린 하나를 골라내는 것은 귀신같이 해내는데 그 이유를 설명해보라고 하면 열리면 열 다들 막막해했다. 시인에 대해 조사해서 발표하는 숙제를 내 줬더니, 한 아이는 빈 손으로 터덜터덜 교탁 앞으로 나와 주머니에서 전자 사전을 꺼내 검색된 내용을 그대로 읽기도 했다. 오늘날 이러한 교육 현실 속에서 대체 아이들에게 지식이란 무엇이고, 삶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개정 증보판 서문 중에서]
"그 사이 나는 11년간의 교직 생활을 접었고, 농업과 인문학을 큰 줄기로 하는 작은 농업학교를 준비하고 있다. 그 학교의 인문학 교육과정으 짜면서 나는 다시금 이 책에서 내가 소개한 여러 자료들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그것은 나의 인문학 소양이 그다지 폭넓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삶을 위한 국어교육>을 넓은 의미에서 '인문학 교육과정'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삶을 위한 국어교육>이 출간될 무렵부터 나는 오늘날 우리 학교교육 현장의 '교육불가능'에 대해 떠들고 다녔다. 그것은 저성장, 탈성장의 현실 속에서 그나마 학교교육을 지탱해 왔던 '노동시장으로의 편입' 기능마저도 닫혀 감으로써 아이들의 일탈과 무기력을 포함한 학교교육의 공동화 현상이 편만하게 되었다는 진단이면서, 다른 하년 입시와 경쟁의 완력에 숨죽이고 있어야 했던 '삶을 위한 교육'의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는 해방의 논리이기도 했다. 나 자신은 이 '교육 불가능'의 문제의식에 골똘하게 빠져 들었고, 그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농업'과 '인문학'의 만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하는 길 위에 지금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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